[천자칼럼] 독일인의 법정신

입력 2015-10-29 18:0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새벽 두 시에 차 한 대 없는 도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다면 그는 독일 사람이다.” 독일인의 준법정신을 거론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독일 외교장관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독일 여행객을 알아보기는 쉽다”며 “그들은 나무로 둘러싸인 곳이라 해도 절대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지식할 정도로 법을 잘 지키는 이 나라에서 뜻밖에도 건널목 무단횡단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야당인 독일 좌파당이 “적색 신호 때 건널목을 건너더라도 다른 사람을 방해하거나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땐 벌금을 부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나섰다. 인구 8100만명에 자전거 7200만대, 5명 중 1명이 매일 자전거를 이용하는 나라에서 이들의 표심을 사려는 속내가 작용한 모양이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차갑다. 자전거 이용자가 특권층이 아니며 시민 모두의 안전을 위해 교통규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독일인의 법정신은 투철하다. 도로교통 분야는 더하다. 초등학생의 생애 첫 면허가 자전거 면허다. 도로표지판과 교통신호 읽는 법을 익히면서 자신과 남을 동시에 보호하는 법을 배운다. 愍喚?이용자의 신호 위반 벌금이 17만원으로 가혹한 것 같지만 이를 당연히 받아들인다.

독일인의 교통법규 준수 비결 중 하나는 신호등의 위치다. 모든 차량이 정지선을 지켜야 신호를 볼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정지선에서 신호등까지의 거리는 6m 이내다. 그러니 조금만 앞으로 나가면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다. 횡단보도와 정지선의 간격도 넓다. 보행자 우선이라는 기본 개념이 사회적으로 합의돼 있다.

이는 신뢰라는 가치를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 가치를 훼손하면 즉각 제재에 나선다. 신고정신이 투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어김없이 신고가 들어간다. 밤에 세탁기를 돌리거나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세우는 경우는 말할 나위 없다. 시위 때도 정해진 장소를 벗어나거나 도로를 점거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최근의 폭스바겐 배출가스 사기처럼 예외도 있다. 그럴 때면 신뢰의 근본 가치를 가장 먼저 되새긴다. 폭스바겐의 로고 VW를 두고 “Vertrauen Weg(신뢰가 사라졌다)”라고 풍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가정이 법전을 비치해놓고 참고하는 나라답다. 이번 주에도 베스트셀러에 ‘민법’이 올라 있다. 독일법 체계를 그대로 들여온 우리 현실은 어떤가. 뒤통수가 따갑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